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베트남 원정 (문단 편집) === 빈레응우엔 전투 === 쩐 구옥뚜안이 수군을 불러 국경을 봉쇄하자 우량카타이는 다이 비엣의 수도 [[탕롱|탕롱(昇龍)]]를 향해 진격하기 위해 군을 양익으로 나누어 한 쪽은 자신이 다른 한 쪽은 차크차크두에게 맡겨 진격했으며 아들인 아유를 시켜 수시로 주변 지역을 정찰하게 했다. 쩐 왕조의 병사들이 이를 눈치채고 필사적으로 방비하자 아유의 부대로 돌아갔고 이후 차크차크두가 이끄는 부대와 합류했다. 몽골군은 빈레(平厉)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쩐 태종이 군사를 직접 이끌고 맞섰다. 쩐 왕조의 군대는 타오 강(红河)의 강변에서 코끼리병과 기병, 보병 등을 앞세워 전방에 횡렬로 늘어서게 한 뒤 후방에 있는 보병과 기병을 엄호하는 형태로 진지를 구축하며 적을 기다렸다. 몽골 군은 타오 강을 건너기 위해 군을 세 부대로 나누어 전방은 차크차크두가 맡고 중군은 우량카타이가 직접 맡았으며 후방은 콰이두와 아유가 맡았다. 우량카타이는 적군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기 위해 다리에서 차출해 온 병사들을 전방에 열지어 전진시켰다. 이 전법은 주효해서 몽골 군은 대리국의 군대 뒤에 숨어서 움직이며 쩐의 군사에게 타격을 입혔고 협상을 하기 좋다고 판단한 우량카타이는 차크차크두를 보내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. >'''너희는 강을 건너려는 군대를 공격하지 마라! 우리와 싸우러 온다면 말을 타고 달려 그 뒤를 막을 것이다. 만일 너희가 속임수로 배를 빼앗아 남벌군이 무너지면 다시는 강에 배가 없을 것이고 너희는 모두 사로잡힐 것이다!''' 하지만 이런 선포가 무색하게도 차크차크두의 군대는 강을 건너자마자 쩐 태종이 직접 지휘하는 코끼리병에게 공격을 받았다. 그러자 아유가 기마궁대를 이끌고 나와 코끼리의 눈과 피부에 사정없이 화살을 퍼붓자 쩐 왕조 군대는 주춤하기 시작했고 쩐 태종 역시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. 오로지 장수 레 푸쩐만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. 그러던 중 누군가가 겁에 질려 쩐 태종에게 공격을 멈추어 달라 했고 레 푸쩐은 그 말을 듣고는 곧바로 황제 앞으로 달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. >'''폐하! 폐하께서는 고귀한 것에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. 어찌 사람의 말을 경솔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?''' 하지만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결국 쩐 태종은 노강(瀘江)에서 퇴각하기 시작했고 레 푸쩐은 그런 쩐 태종을 몽골군이 퍼붓는 화살비 속에서 엄호하며 티엔막 강(拖幕江) 일대로 이동했다. 이 때 쩐 구옥뚜안은 사람들에게 은밀히 지시해 [[청야작전|음식을 숨기거나 파묻어 버리고 깊은 곳으로 숨으라]]는 지시를 내렸다. 티엔막 강으로 이동한 쩐 태종은 작은 배에 올라 레 푸쩐, [[태위]] 쩐 투어의 3남 쩐 냣히유 등에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좋을지 물었다.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레 푸쩐과는 달리 쩐 냣히유는 뱃머리에 앉아서 별 말이 없다가 강물에 손가락을 담근 뒤 '''입송(入宋)''', 즉 '남송으로 망명해야 한다'는 의견을 배 옆구리에 몰래 쓰며 의견을 냈다. 쩐 태종은 쩐 냣히유에게 '네가 모은다던 군은 어디 있느냐'고 물었으나 쩐 냣히유는 "군을 모을 수 없었습니다" 라는 어처구니 없는 답을 했다.[* 이런 무능력한 모습에 후대 레 왕조(黎朝)의 역사가인 응오 씨리엔(吳 士連)은 "적들이 왔는데 무서워하고, 비겁하고, 방어책도 없었으며, 다른 나라의 왕에게 부탁이나 하고, 거기에 황제로 하여금 다른 나라로 망명하도록 강요했으니 그게 무슨 장군이란 말인가?" 라고 시원하게 까버렸다.] 한편 태부직에 있었던 권신 쩐 투도(陳 守度)는 상황이 어려움에도 황제에게 "폐하, 아직 제 머리가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. 그러니 다른 걸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." 라고 자못 당당하게 얘기했다. 쩐 태종은 그 말을 듣고는 아직 해볼 만 하다고 여겨 저항하기로 했다. 그 사이 몽골군은 주변 지역을 정리하며 동보다우(東步頭) 성읍을 점거했다. 다음날 쩐 태종이 이끄는 군대는 강을 사이에 두고 몽골 군과 대치했다. 몽골 군은 꽤 깊을 것 같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물 위로 화살을 퍼부었고 화살이 떠오르지 않는 지역을 피해 말을 타고 도하했다. 몽골 군이 다시 진격해오자 쩐의 군사들은 쩐 태종을 호위하면서 수도 탕롱을 포기하고 퇴각했다. 이 전투 한 번으로 몽골 군은 탕롱을 차지할 수 있었고 무능했던 쩐 냣히유는 근처의 섬으로 달아나 버렸다. 몽골 군은 예전 쩐 태종에게 보냈던 사신들을 가둔 감옥을 찾아냈고 이들을 옭아 맨 대나무 밧줄을 풀어주었으나 사신 중 하나가 그 와중에 숨을 거뒀다. 우량카타이는 분노에 차 점령한 탕롱을 초토화시켰다. 몽골 군은 단 두 번의 전투로 수도 탕롱까지 점거하고 파괴해 복수를 하긴 했으나 아직 쩐의 주력은 남아 있었고 강을 건너면서 적을 쫓느라 전선이 길어진 바람에 가장 중요한 보급품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. 쩐 구옥뚜안이 퇴각하면서 꾸준히 구축한 청야(淸野)작전이 제대로 먹힌 셈. 우량카타이는 병사들을 시켜 주변 마을이라도 약탈해보려 했으나 쩐 구옥뚜안이 이미 주변 지역에 손을 써 말끔하게 청소해 놓은 탓에 털어갈 게 없었다. 9일 간의 허기로 몽골 군이 점점 지쳐갈 때 쯤, 자정이 된 시간에 쩐 태종과 태자였던 쩐 호앙(陳晃)이 군을 몰고 강을 거슬러 올라와 기습을 가했고 몽골 군은 크게 패배했다. 훗날 몽골 군은 쩐의 군사가 형편없고 약했다며 허풍을 늘어놨지만 이 전투 당시 몽골 군은 기습에 크게 놀라 서로 손발이 안 맞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런 소리는 그저 허세에 불과했다. 우량카타이는 더 이상 남은 몽골 군으로는 탕롱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빠르게 화잉산(橫山)을 지나 꾸이호아(歸化)를 통과해 운남 일대로 퇴각하려고 했다. 하지만 몽골군이 빠른 기동력으로 벗어나자 쩐의 군사들은 쫓을 수가 없었는데 놀랍게도 꾸이호아의 추장이었던 하봉(河俸)이 자기 군을 이끌고 몽골군을 기습해 큰 피해를 입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